절반은 원인 모르는 난임…정말 아내 탓일까

입력 2021-02-05 17:13   수정 2021-02-14 16:10

세계적에서 불임으로 고통받는 커플은 무려 8000만 쌍에 달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낸 믿을 만한 통계가 그렇다. 불임의 책임은 주로 여성들이 지고 있다. 여성이 아이를 낳다 보니 ‘임신에 관한 모든 문제는 임신부 몫’이란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탓이다. 오랜 기간 남성 생식에 대한 연구는 필요성조차 인정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과학적으로도 불임의 책임을 여성 홀로 지는 게 옳을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난임 부부 지원사업 결과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체외시술을 시도한 부부 가운데 남성에 의한 난임은 10%대였다. 주목해야 할 것은 ‘원인불명’이 51%에 달했다는 점이다. 남성 탓인지, 여성 탓인지, 제3의 원인인지 알 수 없는 사례가 절반이 넘는다는 얘기다. 게다가 여성에 의한 난임은 난소기능 저하, 배란 문제, 자궁내막증, 여성 건강 이상 등 세부적인 원인이 밝혀져 있지만, 남성 요인은 남성의 기초 건강과 정자 부적합 정도가 전부였다. 남성 생식에 대한 연구가 여성만큼 활발했다면, 남성에 의한 난임 비율이 더 높아졌을 것이란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실제 많은 전문가는 스트레스와 환경호르몬, 각종 환경오염 물질로 인해 남성의 생식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30세 이하 남성의 생식률은 25년간 약 15% 감소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정자의 질이 떨어지는 남성이 호르몬 장애나 피부질환을 앓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남성 생식에 대한 연구가 보다 활발하게 진행되면 새로운 불임 및 난임 원인을 밝힐 수 있을 뿐 아니라 전반적인 남성 건강을 끌어올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란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난임 치료가 해당 여성 건강을 위협하는 것도 문제다.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진이 1993년부터 2011년까지 난임 치료를 받은 여성 2만8442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임신에 실패한 여성은 성공한 여성에 비해 심혈관 질환 발생률이 19%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난임 치료가 혈전과 혈압을 높이는 것으로 추정했다.

최근 이런 흐름을 대변하는 연구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와 프랑스 퀴리연구소 공동연구진은 정자의 편모를 구성하는 단백질에 문제가 생기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정자는 크게 머리와 꼬리 등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머리에는 난자의 막을 녹일 수 있는 물질을 포함한 첨체, DNA를 포함한 핵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드는 미토콘드리아 등이 있다. 꼬리(편모)는 미세소관이라는 기다란 단백질 결합체로 이뤄져 있다.

미세소관은 튜블린이라는 단백질로 구성된다. 연구진은 튜블린 단백질에 글리실이라는 작은 화학물질이 붙지 않으면 정자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과정을 ‘글리실화’라고 부르는데, 글리실화를 시켜주는 효소에 문제가 생기자 정자 운동에 문제가 생겼다.

연구진은 튜블린의 글리실화가 편모의 움직임을 관장하는 모터 단백질인 다이네인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극저온 전자 단층 촬영술로 정자의 움직임을 관찰했더니 다이네인이 편모의 움직임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다. 그 결과 정자가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맴돌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지금까지 튜블린 단백질의 글리실화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밝혀져 있지 않았다”며 “튜블린 단백 남성 불임의 한 가지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고 했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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